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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육군-해군 전투 상황표 본문

역사관련

임진왜란 육군-해군 전투 상황표

차후 찬후 2014.08.05 01:33



임진왜란 육군전투 상황표

일자

격전지

지휘장수

내용

1592. 4.14

부산진

부산첨사 정발

부산성 함락당함(정발 전사)

1592. 4.15

동래성

동래부사 송상현

동래성 함락당함(송상현 전사)

1592. 4.18 ~19

밀양성

밀양부사 박진

밀양성 함락당함

1592. 4.19

김해성

김해부사 서예원

김해성 함락당함

1592. 4.21

경주성(1)

경주판관 박의장

경주성 함락당함

1592. 4.24

상주(1)

순변사 이일

패전(이일의 패주)

1592. 4.23 ~ 28

거창·신창·추풍령

경상도방어사 조경,돌격장 정기룡

패전(일본군 100여 명 참수)

1592. 4.26

문경

문경현감 신길원

패전(신길원의 패주)

1592. 4.26

탄금대

도순변사 신립

패전(신립 전사)

1592. 5.2

한강

도원수 김명원,부원수 신각

패전(김명원의 패주)

1592. 5월 중순

양주(해유령)

전유도대장 이양원,부원수 신각

승리(육전에서 첫 승리)

1592. 5.17 ~18

임진강

도원수 김명원

패전

1592. 5.28 ~ 6.6

용인

전라감사 이광

패전

1592. 6.5

회양성

회양부사 김연광

회양성 함락(김연광 전사)

1592. 6.6

무계

의병장 김면

일본군 100여 명을 죽임

1592. 5월말 ~6월 중순

여강(신륵사·구미포·마탄)

여주목사 겸 경기강원양도조방장 원호

승리

1592. 6.1

대동강 연안

평안감사 송언신

소규모 전투

1592. 6.12

철령

남병사 이흔

조선군 퇴각

1592. 6.14

왕성탄(평양 부근)

영원군수 고언백

패전

1592. 6.15

예천 부근

용궁감사 우복룡

일본군 퇴각

1592. 6.18

평양성(1)

좌의정 윤두수

평양성 함락

1592. 6.19

금화 부근

경기·강원 양도조방장원호

패전(원호 전사)

1592. 6.25

운암

의병장 양대박

일본군 격파

1592. 6월말

초계현마진

의병부장 손인갑

승리(손인갑 전사)

1592. 7.7 ~8

웅치

나주판관 이복남

패전

1592. 7.8

이치

전라도도절제사 권율

대승

1592. 7.9 ~10

금산(1)

초토사 고경명

패전(고경명·고인후 전사)

1592. 7.10

우척현

의병장 김면

일본군 격퇴

1592. 7.17

평양성(2)

도원수 김명원

명나라군과 연합했으나 패전

1592. 7.18 ~19

해정창

부병사 한극함

패전

1592. 7.26~27

영천

의병대장 권응수

영천성 수복

1592. 7월말

의령 부근

의병장 곽재우

승리

1592. 7월말

현풍

의병장 곽재우

승리

1592. 7월말

영산

의병장 곽재우

승리

1592. 7월말

안성

경기조방장 홍계희

승리

1592. 8.1

평양성(3)

순찰사 이원익

패퇴

1592. 8.1

청주

의병장 조헌,승장 영규

승리

1592. 8.2

경주노곡

도대장 김호

승리

1592. 8.3

거창 부근

의병장 김면

일본군 패주

1592. 8.17~18

금산(2)

의병장 조헌, 승장 영규

패전(조헌 전사)

1592. 8.20

경주성(2)

경상좌병사 박진

패전(조선주력군 600명 전사)

1592. 8.21

성주(1)

의병장 김면

퇴각(2차 성주전투 준비)

1592. 8.22

소천(봉화)

의병장 유종개

패전

1592. 8.24~25

영원산성

원주목사 김제갑

패전(김제갑 전사)

1592. 8.28~9.2

연안성

초토사 이정암

대승

1592. 9.8

경주성(3)

경기좌병사 박진

경주성 수복

1592. 9.10~11

성주성(2)

의병장 김면

일본군 격파

1592. 9.16

경성

의병대장 정문부

일본군 격추(주변지역 수복)

1592. 9.20, 30

인동 부근

의병장 장사진

승리(장사진 전사)

1592. 9.24~27

노현·창원

경상우병사 유숭인

패전

1592. 10.1

진주성 외

경상우병사 유숭인

패전

1592. 10.5~10

진주성(1)

진주목사 김시민,의병장 곽재우

대승(김시민 순절)

1592. 10.18

삭녕

경기감사 심대

패전(심대 전사)

1592. 10.30

길주·장평

의병대장 정문부

승리

1592. 10.9~11.10

함흥 부근

남병사 성윤문

승리

1592. 11.12

이원

전순찰사 이성임

패전

1592. 11월말

상주용화동

상주가판관 정기룡

승리

1592. 12

중화

의병장 임중량

패전

1592. 12.10

길주쌍포

의병대장 정문부

승리

1592. 12.7~14

성주(3)

경상도의병대장 김면

승리

1592. 12월말

독성산성(수원 부근)

전라도순찰사 권율 

전라도병사 선거이

일본군 퇴각

1592. ?

함창전투

상주판관 정기룡

승리

1593. 1.6~9

평양성(4)

도원수 김명원

명군과 연합하여 평양 수복

1593. 1.19

길주성 남문 외

의병대장 종사관 원충서

일본군 퇴각

1593. 1.23

단천 부근

오촌권관 구황

승리

1593. 1.25~27

벽제관 부근

명제독 이여송

명군 일본군에게 패배

1593. 1.28

백탑교

의병장 정문부

승리

1593. 1.30

죽산

소모사 변이중

죽산성 탈환에 실패

1593. 2.12

행주산성

전라도 순찰사 권율

대승

1593. 2.30

상주(2)

충청도 조방장 황진

승리

1593. 3.25~27

노원평·우관동

황해겸삼도방어사 이시언

승리

1593. 6.19~29

진주성(2)

창의사 김천일,

경상우병사 최경회

패전(김천일·최경회·고종후 전사)

1593. 8.6

경주성(4)

경기좌병사 고언백

조명연합군 승리

1593. 9.29

함안·웅천

전라좌병사 선거이

의병장 최강

최강의 활약으로 역전

1593. 10월말

영선(1)

순변사 이빈

패전

1593. 11월말

영선(2)

순변사 이빈

일본군 패주

1593. 12.2

안강

경상병사 고언백

일본군 패주

1597. 8.15 ~ 16

고령

상주목사 정기룡

고령 지역 수복

1597. 8.17

황석산성

안음현감 곽준

황석산성 함락(곽준 전사)

1597. 8.16

남원성

전라병사 이복남

조명연합군 대패(이복남 전사)

1597. 9.7

직산 부근(소사)

명나라장수 해생

명군 일본군에게 패배

1597. 9.14

금구

전라도조방장 원신

일본군 패주

1597. 9.20

보은 부근

경상우병사 정기룡

승리

1597. 12.18

광양

전라병사 이광악

승리

1597. 12.22 ~1598. 1.4

울산(1)

도원수 권율

명제독 마귀

명군과 연합했으나 패배

1598. 3.24

삼가 부근

경상우병사 정기룡

승리

1598. 4.8

무주

전라병사 이광악

승리

1598. 4.20

함양사 근역

경상우수사 정기룡

명군과 연합하여 승리

1598. 6.?

순천 부근

전라도별장 육승복

전라병사 이광악

승리

1598. 9.22 ~ 25

울산(2)

별장 김응서,

명제독 마귀

명군과 연합했으나 패배

1598. 9.17 ~ 10.1

사천성

경상우수사 정기룡

패전

1598. 9.19 ~ 10.24

왜교성

도원수 권율,

통제사 이순신

수륙협공작전을 펴려다가 명의 장수 유정이 

일본군에게 뇌물을 받고 퇴로를 허락, 작전실패





임진왜란 해군전투 상황표



일자

해전지

지휘장수

조선함선수

일본함선수

내용

1592. 5.7

옥포

이순신·원균

91

50여 척

적선 26척 격파

1592. 5.7

합포

이억기·원균

91

 5

적선 5척 격파

1592. 5.8

적진포

이억기·원균

91

 13

적선 11척 격파

1592. 5.29

사천

이순신·원균

26

13

적선 13척 전멸

1592. 6.2

당포

이순신·원균

26

21

적선 21척 전멸

1592. 6.5 ~ 6

당항포(1)

이순신이억기·원균

51

26

적선 26척 전멸

1592. 6.7

율포

이억기·원균

51

7

적선 7척 전멸

1592. 7.8

한산도

이억기·원균

72

73

적선 47척분파,12척 나포

1592. 7.10

안골포

이억기·원균

72

40여척

적선 20척분파

1592. 9.1

부산포

이억기·원균

166

470

적선 100여 척 격파

1593. 2.1 ~ 3.8

웅천

이억기·원균

?

?

5차례 적선 공격

1594. 3.4

당항포(2)

이억기·원균

 60

 40

적선 30척 분파

1594. 9.29

장문포(1)

이순신·권율

50

 70

적을 급습

1594. 10.1

영등포

이순신·권율

50

?

전과 없음

1594. 10.4

장문포(2)

이순신·권율

50

?

전과 없음

1597. 7.14 ~ 16

칠천량

이억기·원균

100여 척

600

패전(원균·이억기 전사)

1597. 9.16

명량

이순신

13

133

적선 31척 격파

1598. 11.18

노량

이순신

200여 척(·명 연합)

500

적선 200여 척 분파(이순신 전사)




1. 옥포해전 / 1592. 5. 7



전과 - 왜선 42척을 가앉히고 4천명의 왜군을 섬멸, 판옥선 1척 손실


이순신 장군의 기함을 선두로 하여 횡렬로 늘어서 한꺼번에 안 쪽을 향해 돌진. 그리고 왜군의 중심부로 돌격하여 지자포, 현자포를 마구 쏨. 순식간에 왜선 수 척이 불타고 침몰하기 시작함. 결국 왜적들은 배를 버리고 도망가거나 붙잡혀 격멸.

 이순신 장군은 쉴 틈 없이 함대를 이끌고 합포(마산)까지 적을 추격하여, 왜선 5척을 불태우고 다음 날 고성의 적진포에 머물러 있는 왜선을 찾아내어 11척을 불태움. 1차 출동에서 이순신 장군이 싸워 이긴 옥포해전은 옥포, 합포, 적진포의 싸움을 합쳐서 말하는 것으로서 모두 왜선 42척을 격침.


2. 사천포해전 / 1592. 5. 29





전과 - 왜선 12척 모두 불태움유인작전사용


함대가 뱃머리를 돌려 10리도 못 나와 이순신 장군의 예상은 적중하여 왜적들이 모두 배에 옮겨 타고 우리 함대를 추격하기 시작. 이순신 장군은 급히 뱃머리를 돌려 적들을 향해 공격 명령을 내려 거북선이 돌격의 임무를 띄고 적의 선단 깊숙이 쳐들어감

뒤이어 판옥선들은 재빠르게 후미의 적선들을 봉쇄하고 화력을 퍼붓기 시작.조선 수군은 왜적의 배 12척을 모조리 불태움

거북선이 처음으로 이 전투에 참가하여 그 용맹을 떨치게되었으며, 이순신 장군은 이 전투에서 왼쪽 어깨에 총을 맞지만, 마친 후 부하를 시켜 칼끝으로 총탄을 파내게 하였다고 함.


3.당포해전 / 1592. 6. 2




전과 - 왜선 21척 모두 격침2천여명의 적병 무찌름.


당포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21척의 적선을 격침시키고 2천여 명으로 추정되는 적병들을 무찌름. 이 해전의 또 다른 의미는 왜적의 수군 선봉부대를 격파하였다는 것과 도요토미의 신임을 받던 왜장이 이 전투에서 죽었다는 것. 즉 당포해전을 통해 왜적의 서진 의도는 좌절


4. 한산도대첩(경내량해전) / 1592. 7. 8






전과 - 왜선 59척을 가앉히고 9천명의 왜군을 섬멸      왜장 와키자카 구사일생으로 도망      도요토미히데요시의 대륙정벌의 야망을 꺾음.

: 76척의 대 함대

조선: 56[전라좌수군 24, 전라우수군 25, 원균의 경상우수군 7]


넓은 바다에서 왜적의 배와 왜 수군들까지 모조리 잡을 계획을 세움.

[견내량은 거제도와 통영만 사이에 있는 긴 수로로서 길이는 약 4km이며 넓은 곳도 600m 를 넘지 않는 좁은 해협이라 전투하기에 매우 좁았고, 암초가 많아 판옥선들의 행선에 지장을 줄 것이 분명했음.] 


인출전포지계(引出全捕之計) : 넓은 바다 한가운데로 이끌어낸 뒤 완전히 봉쇄하다.13척의 배로 적에게 소규모의 군세로 여겨지도록 하자 적장 와키자카는 이 13척이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의 전부라고 생각함

유인작전으로 조선 수군은 조금씩 후퇴하고 왜적들은 한산도 앞 바다까지 뒤쫓아 옴. 이순신 장군의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지금까지 후퇴하던 조선 수군의 전 함선은 일제히 뱃머리를 돌리고 학익진을 형성하며 적을 포위하고 공격을 개시

모든 장졸들은 온 힘을 다하여 총포와 불화살을 쏘아대니 왜적들은 기가 꺾이어 전의를 잃고 도망가므로 전세는 눈 깜짝할 사이에 결정됨. 적선 73척 중에서 대형 층각선 7, 대형선 28, 중형선 17, 소형선 7척으로 도합 59척이 격파되거나 불태워졌고 왜장 와키자카는 도망쳤다고함

왜군의 전사자는 무려 9천여 명이나 되었음.한산대첩의 가장 큰 의미는 왜군들의 수륙병진작전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고 또한 남해의 제해권을 확실히 장악하였음을 들 수 있음. 한산대첩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에 대한 사형선고이며, 그가 꿈꾸던 대륙정벌의 야망을 꺾어버린 해전임.


5. 부산포해전 / 1592. 9. 1





전과 - 왜선 100여척 침몰 / 정운 전사


이순신 장군은 부산 포구를 향하여 총공격 명령을 내림. 양 함대의 전선수를 비교하면 약 31의 비율로 조선 수군이 열세이었고 지리 조건도 왜군들은 언덕을 의지하여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하여 공격하지만 조선 수군은 해상에서 완전히 노출되어 공격이 매우 불리하였음

맨 먼저 포구를 향하여 곧장 들어가면서 밖으로 나오던 왜의 대선 4척을 격파. 그때 부산진 동쪽에서 약 1마일 정도 떨어진 언덕 밑의 3개소에 정박하고 있는 왜선들은 탐망선의 보고와 거의 같이 대··소선을 합하여 470여 척이었음

이들 전선은 해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으나, 공격과 더불어 발사된 포환과 화살의 세례를 받게 되자, 왜군들은 제각기 배를 버리고 육상으로 올라가서, 언덕 위에 굴을 파고 있는 병사들과 함께 총통과 화살을 갖고 산 위에서 대응함  

이 전투에서 녹도만호 정운이 전사함. 이순신 장군은 날이 어두워지기까지 정박해 있는 왜적의 배를 부수어 1백여 척을 침몰시키는 큰 전과를 거둠

부산포해전으로 왜군의 바다에서의 활동은 잠잠해졌고 조선 수군은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함.


06. 칠천량해전 / 1597. 7. 16


전과 - 200여 척의 배와 많은 군사를 잃음.         역전의 용장들과 원균 사망


원균은 200여 척의 전선을 거느리고 한산도를 출항

절양도 앞바다에는 수많은 왜선이 대마도에서 건너와 있어서 원균은 모든 전선으로 하여금 치열하게 전투를 하게 하였으나, 종일 항해로 군사들은 피로하여, 전세는 매우 불리하였음

원균은 남은 전선을 수습하여 가덕도로 후퇴하여, 목마른 군사들을 상륙시켜서 숨어서 대기하고 있던 왜군들의 기습을 받아 400여 명의 아까운 군사를 잃고 다시 칠천량으로 도피함

왜군들은 조선 수군의 형세를 정탐하면서 점점 칠천량으로 접근. 715. 왜군들은 기습 공격을 개시함. 원균은 육지로 도주하여, 지휘관을 잃은 대부분의 군사들은 장렬한 최후를 마치고 맘.(여기서 거북선도 모두 바다에 가라앉고 말았다) 원균은 순천부사 우치적 등과 더불어 뭍으로 오르기는 하였으나 뒤따라오는 왜병의 칼날에 죽음을 당하고 맘

이 칠천량해전은 7년간의 왜란을 통하여 조선 수군이 당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단 한 번의 참패였다.



07 명량해전 / 1597. 9. 16






전과 - 12척으로 왜군의 13331척을 격침 시킴.

명량해협은 진도와 화원반도 사이에 있는 좁은 수로로 조류는 국내의 수로 중에서 가장 빠른 곳임.

133척의 왜선들은 목포 쪽으로 흐르는 북서류를 타고 명량해협을 통과하려고 하였을 것이나, 뜻밖에도 여기에서 이순신 함대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고, 전투 중에는 동남류로 반전 고전을 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반면 이순신 장군의 함대는 왜선을 맞아 처음에는 강력한 역류를 타고 전투 해역에 돌입하였을 것이며, 다음 조류가 바뀔 때까지 결사적으로 왜선들의 해협통과를 저지하였고 동남류가 흐르게 됨에 따라 유리한 위치에서 전투를 하게 됨.

12척으로 133척 중 31척을 격파한 명량해전은, 조선 수군으로서는 단 한 척의 손실도 없이 완벽한 승리로 막을 내림.명량해전은 칠천량해전 이후에 남해안을 휘젓고 다니던 왜군의 수륙병진계획을 송두리째 부수어 버리고, 정유재란의 전환점을 마련해 줌.



08. 노량해전 / 1598. 11. 18~19




전과 - 왜선 200여척을 격침 / 이순신 장군 전사

1118일 저녁 6시경에는 무수한 왜선들이 노량에 집결하였으며, 그 척수는 무려 500여 척에 달하고 있었음

이순신 함대는 왜선에 불을 지렀고 관음포로 물러선 왜선들은 최후의 발악을 하기 시작함. 전투 중 이순신 장군은 왜군의 층각선을 공격하여 그 중 1명을 사살함. 그들의 층각선이 공격당하는 것을 본 왜군들은 진린의 전선을 그냥 버린 채 층각선을 구출하려 함

진린은 그 틈에 급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으며,이순신과 진인은 다시 합력하여 포를 발사하여 왜선을 불사르고 깨뜨림. 이때 날아든 총탄은 이순신 장군을 쓰러뜨리고 맘. 곁의 회와 완은 울음을 참고 시체를 배 안으로 옮기고 그대로 독전기를 흔들면서 전투에 임하함. 때문에 어느누구도 알지 못했음

이렇게 전투를 계속하는 동안, 그 날 12시경까지 200여 척의 왜선이 격파되었으며, 적의 사상자 수는 헤아릴 수 없었음.




09. 해전에 사용된 주요 진법

1) '학익진(鶴翼陣)'이란?



학익진(鶴翼陣)과 정()자 타법에 대해 좀 더 알아보도록 하자.학익진은 기본적으로 그림에서 보듯이 적은 아군에게 종대가 되도록 하고, 아군은 횡대가 되도록 배치하는 형태에 적을 감싸 안듯 양 날개가 휘어진 배치가 된다

이런 배치는 아군의 포격 유효 사거리 안에 적을 최대한 집어넣기 위한 것이다.4열 종대의 적선 100척과 이순신 장군의 함대 10척이 대적을 했다면, 병력의 차이는 100:10이지만 접전하는 시점에서는 4:10이 되어 그 비율이 역전된다


이 같은 원리를 실전에 적용한 것이 학익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실전에서는 이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하여간 늘어선 적을 향해 아군으로 깔때기 모양을 만들어 에워싸는 것은 전투병력의 투입 비율에서 상당한 차이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여기에 이순신은 본문중의 설명처럼 함포전을 통한 일정한 거리의 유지로 그 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다. 다시 이순신은 조선 수군이 보유한 판옥선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더욱 큰 효과를 창출해 낸다. 즉 판옥선의 특징을 이용한 것인데, 이 배는 배의 바닥이 평평해 빠르게 달릴 수는 없으나, 홀수선(배가 물속에 잠기는 선)이 낮아 수심이 낮은 서해에서 유리하며, 특히 양측의 노를 반대로 젓는 것으로 제자리에서의 회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제자리에의 회전은 판옥선을 쉽게 돌려 측면에 설치된 화포를 적에게 발포함으로써, 선수와 선미에 설치된 2문 내외의 화포에 비해 5배인 10여문의 화포를 빠르고, 또 일시에 발포할 수 있게 해 준다. 즉 학익진의 형태에서 종대로 내려오는 적은, 위의 예에서 4척이 각각 2문씩 총 8문의 화포를 발포할 수 있지만, 이순신의 판옥선은 학익진으로 4:10, 다시 화포에서 8:100의 비율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즉 화포전을 계속하는 한 100:10의 전세는 8:100으로 역전된 것이다.다시 판옥선의 제자리 회전 기능을 적극 활용한다면, 좌현의 포를 발포할 때, 우현은 장전을 하고, 발포가 끝나면 배를 회전시킨다. 이 시간에 발포를 마친 좌현은 장전을 하고, 장전이 끝난 우현이 적에게 향하면 다시 발포한다. 다시 배는 회전하고 회전이 끝나면 장전이 마쳐진 좌현이 다시 발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서 앞서의 8:100은 다시 8:200의 비율로 역전이 된다


바로 이것이 정()자 타법으로 적선에 화포가 많은 측면을 향하게 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위의 학익진도는 바로 학익진과 정자타법이 동시에 적용되는 형태인 것이다.이쯤의 설명이 충분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전술을 고안하고 실천한 이순신이 왜 대영웅이고, 대제독인지는 분명한 것이다


설명을 통해서는 쉽게 느껴질 수 있으나 이순신이 이와 같은 전술을 사용하고 있을 때, 이에 당하기만 했던 10여만 이상의 왜군들은 임진왜란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패전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또 본문중의 내용처럼 이 전술의 원리를 일본이 알아낸 것은 300년이나 지난 후였으며, 이순신 이후 대략 이때쯤까지 전세계의 해전은 계속 접현전으로 일관해 왔던 것이다. 즉 이순신은 이순신 이후 가장 빨리 이 전술을 고안한 사람보다 300년이나 빨랐던 것이다.






이순신의 학인진도를 보면 얼마나 정교한 진형인지 감탄하게 된다. 그림의 학익진 형태(즉 포위진형)는 이 진형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약점을 완벽하게 커버하는 것이다

그 약점의 첫번째는 이런 진형에서 함포의 사거리가 충분치 못하거나 정확도가 떨어질 경우, 함포의 영향을 받지 않는 중심부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런 진형을 상대하는 측이 충분한 이동속도(여기서는 배의 속도)를 가지고 있고 원추형의 진을 구성해 중앙을 빠르게 돌파하는 종심돌파를 통해 진의 중앙을 깨고 좌측이나 또는 우측으로 돌아 들어가면 순식간에 상호간의 위치, 즉 횡대와 종대의 위치가 반대가 되고, 병력은 반으로 나뉘어져 각개격파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에서의 학익진도는 학익진 안에 작은 학익진을 배치한 형태로, 진의 중심부에 발생할 수 있는 사각지대를 없애면서 병력의 집중을 통한 종심돌파마저 확실하게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흐르는 물살과 바람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런 형태의 진을 수십척의 함선이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모든 함선이 제자리를 고수하는 것도 어려운데, 레이더 등이 없어 정확한 위치를 알기도 어렵고, 육안에 의해 수평적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바다에서 진의 형태를 바로 잡으며 위치를 관리하는 지휘부는 더욱더 어렵게 마련이다

실전에서 이런 형태의 진형을 그것도 평지에서의 육군이 아닌 바다에서의 수군이 유지해 완벽하게 운영했다는 것은 이순신이 단순히 전략과 전술의 귀재일 뿐 아니라 경영의 귀재이기도 했음을 짐작케 한다.


2) '일자진(一字陣)'이란?





뱀처럼 늘어세워 길게 벌이는 전법(횡렬)


3) '점자찰진'이란?




많은 배들이 이동하거나 적군을 공격하기에 용이한 진


4) '장사진(長蛇陣)'이란?



뱀처럼 늘어세워 길게 벌이는 전법(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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