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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정조는 과연 훌륭한 임금인가? 본문

역사관련

영조와 정조는 과연 훌륭한 임금인가?

소하 찬후 2016.06.05 23:09

흔히들 조선의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영조과 정조의 통치기간을 조선의 중흥기라고 평가를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 다른 측면에서 접근해 보고 싶다.

 

조선은 비록 왕정 국가였지만, 신권우위의 유교적 원리에 기반한 국가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신권 우위의 유교적 원리라는 것은 유교적 소양을 갖춘 철인(哲人)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왕도 결국 사대부라는 평범한 사람중 한명이며, 왕 역시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끊임없는 학문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유교적 소양을 갖춘 이를 '군자' 혹인 '대인' 이라고 칭하였으며, 이에 대비되는 존재를 '소인'이라고 칭하였다.

 

붕당이라는 용어는 대략 송나라 구양수의 '붕당론'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애초에 이 붕당이라는 존재는 학문적 입장(학문적 해석에 따른 정치적 입장)-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무리를 이루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를 관철시기기 위하여 무수히 많은 논쟁과 대립을 이루며, 때로는 국왕의 판단에 따라 자기 세력의 몰살이라는 위험을 감수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무수히 많은 집권세력의 교체가 이루어 졌는데, '민주' 혹은 '인권'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에는 특정 세력의 정치권력 독점 보다는 다양한 정치적 입장의 세력에 의한 정치권력 교체가 훨씬 바람직 하엿다.

 

이러한 측면에서 숙종시대 왕 중심의 조제보합론이나, 영-정조 시기의 완론-준론 탕평책을 개인적으로 매우 비판적으로 생각한다.

 

붕당의 무리는 치열한 논쟁과정을 거치며,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최종 결정자인 왕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숙종시기에 접어들면서 그때까지 최종 결정자의 위치였던 왕이 논쟁의 중심에 참여하기 시작하고, 승패를 갈라 패배한 반대파를 몰살 시키는 방법으로 정국을 운영해 나갔다. 이러한 왕의 적극적인 국정 참여는 왕권의 강화를 불러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전까지 논쟁 수준에서 그치던 붕당간의 대립을 사생결단 수준의 극단으로 치닫게하였다는 비판에 직면 할 수 밖에 없다.

 

이에 더하여 영-정조 시기에 이르러 서는 왕이 이러한 논쟁의 중심자에 자리한다.

 

특히 영조와 정조는 붕당의 무리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어서 탕평책을 펼치며 붕당의 존재를 거의 압살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기 국왕이 육성한 탕평파를 중심으로 조정은 시파와 벽파로 나뉘었다. 이런 시파와 벽파는 기존까지 절대적이었던 서인과 남인의 구분이 아닌 임오화변(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입장차이였다.)

 

특히 영조대에 시작하여 정조대에 이르면 왕권이 그 어떤 시대보다 비대해지고 절대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러한 집중된 왕권을 잘만 할용 하였다면, 실재로 조선의 중흥기를 이룩 할 수도 있었을 것이나, 문제는 정조의 급작스러운 죽음이다.

 

집중된 권력을 완벽한 철인을 만난다면 효율적인 사용이 가능 하겠지만, 실재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완벽한 철인 보다는 범인이나, 범인보다 못한 이들이 이러한 권력을 장악한 경우가 많았고, 정조 사후 순조가 죽위하지만, 워낙 어렸기에 수렴청정이 이루어지고 권력은 안동김씨의 김조순에게 넘어가고, 잠시 풍양조시 조만영에게 넘어 갔다가 다시금 안동 김씨(특히 장동김문)으로 넘어가는 세도가에게 집중된 권력이 넘어가게 된다.

 

최소한 견제세력이 존재하던, 영정조 이전의 상황에서 국왕의 급사는 붕당간의 견제로 인하여 특정 세력의 독주로 이어지는것이 불가능 하였지만, 왕권으로 집중된 권력을 견제세력이 없는 특정 가문에서 독점하게 된 순간, 이전까지 수백년에 걸쳐 오나성시키 조선의 국가체제는 빠른 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한다.

 

국가운영의 핵심은 군정과 세정은 물론 신규 인력의 충원인 과거제가 흔들리거나 붕괴수준에 직면하고, 지방 말단에까지 도달했던 중앙의 명령체계가 유명무실해 지면서, 지역토호들 중심의 지방권력이 등장하고, 이러한 지방 토호는 권력을 독점한 세도가와 결탁하게되어 중앙과 지방의 정치행정체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현대에 이르러 정치사상적으로 결론난 실증적 사실중 하나는 초인적인 철인 1인에 의한 효율적인 통치를 기대하는 것 보다는 평범한 이들이 집단으로 모여 끊임없는 토론과 설득의 과정을 거치며 집단지성을 모아 국가를 통치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영-정조 시기를 과연 높이 평가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붕당을 없애지 않고, 존속 시켰더라면 최소한 특정 세도가에 의한 세도정치는 등장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 정치권력의 상호견제가 이루어 지는 과정에서 국가 운영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되어, 순조 이후에 벌어진 민란의 발생이나, 이양선의 출몰, 서양기술과 철학의 전래 과정에서 보다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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