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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四季

곡성 (哭聲/The Wailing / The Strangers) (2016) 본문

방송과 영화

곡성 (哭聲/The Wailing / The Strangers) (2016)

소하 찬후 2016.06.28 00:12

감독 / 각본 : 나홍진
출연 :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 쿠니무라 준, 김환희 등
개봉일 : 2016년 5월 11일
상영 시간 : 2시간 36분

 

 

이제 볼 사람은 모두 본거 같으니 스포에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자....

 

오랜만에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였다.

 

 

솔직하게 이 영화를 알고 보자면.....초반에 나오는 일본인 쿠니무라 준이 하는 낚시잘+누가복음 24장...여기에 더 힌트를 주자면 "절대로 현혹되지 마라"라는 3가지로 이 영화의 모든것을 압축 할 수 있다.

 

영화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한국의 무속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듯 하지만, 이 영화야 말로 철저한 기독교적인 사고 속에서 철저하게 관객들을 농락하는 영화이다.

 

감독은 친절하게도 영화가 처음 시작 하면서 부터 답을 제시하고 있다.

 

처음에 나오는 쿠니무라 준의 낚시질.....영화속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지만, 모든 관객들은 이 낚시질에 집중한다.

이 영화에서 낚시가 의미하는 것은 주인공과 그 딸이 걸려드는게 아니라 관객들이 걸려드는 거다. 애초에 초반에 등장하는 낚시의 목적은 영화 이야기 자체가 아닌 관객들이다.

 

거기에 친절하게도 감독은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를 성경 한구절로써 암시도 아니고 그냥 먹으라고 던져준다.

 

바로 누가복음 24장 37~39절로써  37장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장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장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걸로 끝이다.

 

그러나 도리어 감독이 초반부터 너무나 명확하게 던져준 해답을 관객들은 도리어 외면하게 되는데.....이게 바로 이 영화의 백미다.

 

어느순간부터 영화는 우리가 뻗어 나갈 사고의 가지를 하나씩 자르고 들어온다, 조용하게 하나씩 하나씩 자르고 들어오면서 종반부에 가면 양자택일을 하게 만든다.

 

관객들은 곽도원이 무명을 만나는 순간 그의 선택에 집중하지만......정작 선택해야 하는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다.

 

이 정도 영화가 진행되면, 주인공과 관객들은 정보의 격차가 발생하게되는데.....

 

이러한 격차에서 선택을 하게되는 것은 우리 관객이다.

 

정말 몰이사냥을 당한 기분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주인공은 무명역의 천우희와 일본인 역의 쿠니무라 준이다.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곽도원이지만, 이는 표면일 뿐이다. 거기에 이러한 곽도원을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황정민의 일광이 등장한다.

 

황정민의 일광은 곽도원을 감추기 위한 표면이고, 곽도원은 무명의 천우희와 일본인 쿠니무라 준을 감추기 위한 껍질일 뿐이다.

(일광의 황정민, 주인공인척 하는 곽도원.....이는 모두 관객을 낚기 위한 치밀한 안배이다. 단순히 이건 최종보수가 누구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누가 복음에 집중해 보자....이 영화의 핵심이다.

 

예수께서 3일만에 부활하시나 부활하신 예수를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믿게 하시며 하신 말씀이다. 이후 예수는 그래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못 박힌 자국.....성흔으로써 부활을 증명하신다.

 

진짜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로.....

 

이 내용을 알고 영화를 다시 보면 진짜 쓰러지는 거다.

 

 

초반 영화는 곽도원을 중심으로 곡성시골마을에 일본인이 악으로 등장한다.(한국에서 일본인은 전형적인 비열하고, 악으로 단정하는 관념에 충실했다.)

 

그러다 영화가 진행되며, 곽도원의 조력자로 무속인 일광 황정민이 등장하고, 이보다 이르게 무명 천우희가 등장한다.

 

이즈음에 이르면, 일본인은 절대 악인 존재이고, 곽도원+황정민은 선의 편이다.

 

그러다 갑자기 이야기가 급변하여, 일광 황정민과 일본인 쿠니무라 준이 선이되고, 무명의 천우희가 악이되다가, 다시 일광 황정민과 일본인 쿠니무라 준이 결탁한 것으로 이야기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여기에서 초반에 나온 누가복음 24장이 중요하다. 친절하게 동굴에서 쿠니무라 준은 다시한번 누가복음 24장을 읊어주신다.

 

이즈음이 되면, 관객 누구든지 누가복음에 집중하게 된다.

 

 

"37장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장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장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순간 영적인 존재였던 무명의 천우희가 곽도원과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곽도원의 팔을 잡으며 닭이 3번 울때를 기다리라고 한다.

 

오.....맙소사......영적인 존재였던 무명이 살과 뼈를 가진 손으로 곽도원에 임하신 것이다. 최소한 무명은 기도교적인 관점으로 곽도원과 그 가족을 수호하기 위한 예수나 예수의 대리인인 천사에 준하는 존재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곽도원은 그러한 구원자적인 존재를 불신하고 결국 닭이 3번 울기전에 집으로 돌아가나, 일가족은 모두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그렇다면, 곡성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인가?

 

아니다. 비슷한 시점에 우리에게 정보의 격차를 발생시킨 동굴속 일본인 쿠니무라 준과 부제 양이삼과의 대화가 오가는데.....정말 전율이 오는 영화속 새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악마의 형상으로 변해가며, 일본인 쿠니무라 준은 부제 양이삼에게 누가복음을 읖조리기 시작한다.

 

이때쯤되면 쿠니무라 준의 모습을 보고 악마가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을 타락시키고, 주인공 곽도원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누가복음에 집중하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무명의 천우희나 일본인 쿠니무라 준은 동격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한명은 천사의 모습으로 한명은 악마의 모습으로 임하였으나, 정작 둘은 예수나 그에 준하는 구원자적인 존재이다. 

 

이 영화에서 악은 일본인 쿠니무라 준이 아니다. 쿠니무라 준은 일광과 손을 잡고 곽도원에게 절망과 비극을 안겨주는 존재가 아니다.

 

결국 일본인 쿠니무라 준 역시 곽도원과 그 가족을 구원하고자 신께서 보낸 조력자였던거라고 생각한다.

 

 

일본인 쿠니무라 준이 악마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지만, 중요한것은 그 외형이 아니다.

 

일본인+악마의 형상이라는 것으로 모든이들이 일본인 쿠니무라 준이 일광 황정민을 사주하게 만든 절대 악으로 생각 하기 쉽지만.....

 

정답은 영화 시작에 나온 누가복음이다. 거기에 감독은 더욱 강력하게 영화에서 언급되지 않은 성흔의 존재까지 일본인 쿠니무라 준을 통하여 보여준다.

 

무명 천우희와 일본인 쿠니무라 준은 처음부터 주인공 곽도원의 비극을 도울 신께서 보냈거나, 직접 임하신 조력자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극을 만든 악은 과연 누구인가?

 

바로 일광 황정민이다.

 

 

인간 앞에 스스로 임하여, 수많은 증거를 보여주었음에도 결국 믿지 못하고, 신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를 부정한 인간과 그러한 인간을 유혹하고, 신을 부정하게 만든 모든 원흉이 바로 일광 황정민이다.

 

이 영화에서 악마는 스스로 힘을 내보이거나, 잔혹한 성격이나 행동, 악마적인 외형을 드러냄으로서 스스를 증명하지 않았다.

 

그저 인간 스스로 찾아옥[ 만들며, 말로써 인간을 꾀어낼 뿐이다.

 

모든 것은 인간 스스로 선택하게 만든다. 아니 스스로 선택했다고 착각 하게끔 만든다.

 

황정민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게 해주는 장치가 있는데, 바로 금줄에 묶인 금어초가 바로 그것이다.

 

금줄에 묶인 금어초는 신께서 곽도원과 그 일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장치이다. 그러나 이는 곽도원이 신의 말슴을 부정하고, 닭이 세번 울기전 집으로 돌아가며, 그 역할을 다하고, 이러한 금어초가 시든 다음에야 황정민은 집 안으로 들어 설 수 있었다. 금어초는 신의 축복을 의미하고, 시듬은 신을 부정하고 악마에 타락한 인간의 앞날을 의미한다.

 

여기에 한가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황정민이 무명 천우희를 만나고 짐을 챙겨서 서울로 도망가는 장면이다.

 

서울과 남원의 분기점을 지나는 순간, 나방의 습격이 있었고, 어느 시점에서 이러한 나방의 습격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여기서 황정민은 다시 차를 돌려 곡성으로 돌아간다.

 

나는 이것을 황정민이 완전하고, 무한할 것으로 생각했던 신적인 존재가 그 한계성을 드러냈다는 것을 자각하는것으로 이해한다.

 

이 순간 황정민은 곽도원을 보호하는 존재가 결코 완전한 존재가 아니란 것을 깨닳고, 다시금 곽도원을 타락 시키기 위해 돌아가는 것이다.

 

 

결국 황정민의 판단은 옳았다. 곽도원을 보호하기 위해 내려왔던 존재들이었지만, 결국 움직여 선택하는 것은 인간인 곽도원 이었던 것이고, 황정민은 그러한 점을 파고들어 곽도원과 그 일가족을 비극과 절망에 빠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관객들이 무명 천우희가 선이고, 일본인 쿠니무라 준이 악이다...라고 단정하게 될때 정작 중요한 황정민의 곽도원에 대한 유혹과 타락의 계획은 여지없이 성공하였지만, 이 영화를 본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냥 일광 황정민은 일본인 쿠니무라 준에 결탁한 존재쯤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일본인 쿠니무라 준과 황정민은 결코 같은 편이 될 수 없다.

 

처음 굿판에서 살을 날릴때 분명 일본인과 황정민은 그 대립성을 명확하게 보여주었고, 영화 어디에도 일본인 쿠니무라 준과 황정민의 접점은 없다.

 

마지막 황정민이 상자를 떨어뜨려 거기에 나온 사진과 사진기를  보고 일본인 쿠니무라 준과 그 관계성을 의심하게 하지만....

 

이 사진기와 사진 역시 초반의 낚시질 처럼 관객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장치 정도로 생각된다. 이런 장치들을 계속 던져주면서 감독은 관객들의시선을 돌리고 의도하는 방향으로 관객들을 몰고 간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미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말이다.

 

유행어 처럼 떠오르는 "뭐시 중헌지도 모르고"관객들은 이런 떡밥에 낚여서 전혀 엉뚱한 것만 쫓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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