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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과 영화

2017년에 다시본 그랜토리노

차후 찬후 2017.09.23 13:35


이전 포스팅 : http://sso3208.tistory.com/116


예전 영화가 처음 나왔을때 이 영화를 보고 후기를 올린적이 있었다.

그때도 클린트이트우드옹의 감독이 보이고자 하는 것과 본인의 연기에 매우 큰 울림을 느꼈던 영화를 오랜만에 OST를 들으며 다시 한번 되돌아 보고자 한다.



영화속 주인공 코왈스키는 전형적인 노년의 백인남성이다.

전쟁에 참여했던 퇴역군인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지만, 부인은 먼저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과는 불화로 떨어져 살며 만남도 소원하다. 거기에 그래도 노년의 노쇄한 몸으로 홀로사는 아버지를 걱정한 아들은 요양시설로 들어갈 것을 권유하지만 코왈스키는 자신은 아직도 젊을적 모습 그대로 건재하다며 그런 아들과 싸우기도 한다.


이런 그가...외국에서 이민을온 유색인종 소년과 소통하면서 스스로 세상의 흐름을 자각해 나가는 점을 나는 매우 높이 평가하고 싶다.

코왈스키는 한걸음 뒤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애초에 코왈스키가 맞고 있는 타오뱅을 구해줘봤자, 구타와 괴롭힘은 코왈스키가 없는 곳에서 행해질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정 수위 이상으로 행해지지 않는다면, 어느 아버지가 그러하듯 스스로의 힘으로 그런 상황을 극복해 내기를 바라며 그냥 바라 볼 뿐이었다.


슬슬 노년으로 자신을 자각하며, 세상을 마무리 지을때 찾아온 유색인종이자 이민자 가정의 꼬맹이를 바라보며, 코왈스키가 보여준 모습은 참으로 담담하다. (물론 표현은 과격하지만...)


문득 이 영화가 다시 생각난 이유는 OST를 우연히 듣게된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도 존윅 리로드를 봤기 때문인것 같다.

영화에서 존윅의 복수 방법은 참으로 시원했다.

("존윅은 살인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한명이라도 더 죽인다." 라는 인터뷰가 생각난다.)


그랜토리노의 정의구현 방식과는 완전히 반대의 주인공인 존윅을 보면서 그랜토리노가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영화속 코왈스키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어린 친구 타오 뱅을 바라보면서 유색이민자 가정이 미국 사회에서 받는 차별과 어린 유색인종의 소년이 또래집단에서 받는 폭력과 괴롭힘을 바라보는 노년의 퇴역군인이자 가장인 코왈스키...자신이 젊음을 바쳐 이룩해낸 위대한 미국의 이면을 목도한 것이니 노쇄해져가는 지금에와서 바라보는 이런 모습은 착잡했을 것이다.


그러나 타오뱅에 대한 폭력의(이 타오뱅 개인에 대한 폭력을 넘어 미국 사회의 유색 이민자 가정에 대한 폭력) 수위가 임계치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코왈스키는 자신만의 정의구현을 시작한다.


존윅 처럼 말 한마디 하는 시간을 아껴서 한 명이라도 더 죽이는 복수가 아닌, 철저히 제도권 내에서 정의구현을 시도하는데 바로 자신의 몸숨을 담보로  복수를 시작한다.


어차피 시한부 인생인 코왈스키는 타오와 수를 괴롭히는 무리에 찾아가 그들이 먼저 총기를 발포하도록 유도하고 코왈스키는 그들의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이게 복수의 전부이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전혀 가볍지 않다.


코왈스키는 전쟁에 참전했던 퇴역 군인이다. 이런 베테랑들에 대한 미국사회의 존경은 매우 높다. 


코왈스키에 대하여 유색인종의 갱단이 비무장 상태의 백인 베테랑에 대해서 총기를 발포하여 사망하게 만들었고, 이 유색인종의 갱단은 다른 이들에 대한 폭력과 강간을 일삼는 조직이었다라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미국 사회 전체가 들고 일어나게 된다. 


단순히 복수한다고 총들고 쳐들어가서 다 쏴죽이고 정작 본인은 범죄자가 되는 영화속 복수가 아닌, 가장 현실적이고, 철저하며, 제도권 내에서 행해지는 복수인 것이다.(사실상 저 갱단은 법정에서 자비를 바랄 수도 없고, 감옥에서도 무사히 수형 기간을 채울 가능성도 낮다.)


코왈스키가 총탄에 맞아 바닥에 쓰러지고, 경찰차가 달려오는 장면은 정말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여운을 남겨준 장면이었다.


이후 코왈스키의 유언장을 읽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버지란 존재의 인간적인 면모는 또다른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코왈스키의 잘례식장에서 신부가 조문객들에게...)

코왈스키씨가 한번은 저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저에게 젊은 여자들이나 홀리고 다니는 사이비 교주 같다고 했습니다. 
월트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옳았습니다. 
그는 확실히 삶과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배운 한 소년도요 ....



(코왈스키의 유언장을 확인하기 위해 온가족과 타우등이 한자리에 모여)

이 집은 도로시가 원했듯이 교회에 기부한다. 
..........
마지막 항목입니다. 죄송하지만 말투를 바꾸겠습니다. 
코왈스키가 씌여진 대로 읽으라고 하셨네요

'나의 1972년형 그랜토리노는...내 친구... 타오 뱅에게 주도록 하겠다. 
지붕에다가 이상한것 칠하지 말고, 얼간이 같은 불꽃이나 이런거 칠하면 죽는다!! 
차에다가 왠 이상한 양아치 태우지도 마라 아주 상상하기도 싫다. 그럼 죽는다~ 
그것만 잘 지키면 그 차는 니꺼다.


And I'd like to leave my 1972 Gran Torino to my friend, Thao Vang Lor. 

On the condition that you don't chop-top the roof like one of those beaners, don't paint any idiotic flames on it like some white trash hillbilly, and don't put a big, gay spoiler on the rear end like you see on all the other zipperheads' cars. It just looks like hell. If you can refrain from doing any of that... it's y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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